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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더리더 기자
  • 기고
  • 입력 2010.02.08 00:03

“당선을 원한다면 유권자를 감동시켜라”

성희직 시인의 ‘선거이야기 나의 선거이야기’②

▲ 성희직 시인. ⓒ2010 더리더/이태용
【태백 더리더】 성희직 시인= 투표일을 5일 남겨놓고 두 번째 합동연설회가 정선군 사북읍에서 열렸다.

  당시만 해도 도의원선거는 합동연설을 두 차례나 하였다. 연설회가 열린 사북초등학교 운동장엔 1,500여명이 넘는 많은 청중이 모여들었다.

  광부출신 민중당후보와 광업소사장의 대결에‘화제의 선거구’라며 중앙언론사에서도 취재를 내려왔다.

  지금처럼 단체장과 동시선거가 아닌, 광역의원선거 하나만 실시하던 때여서 지방선거임에도 관심이 뜨거웠다. 연단에 오른 나는 서툰 연설솜씨로 나마 열변을 토하였다.

  “사북노동자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 사북에서, 광부들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진짜광부 성희직이가 이렇게 당당하게 도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이제 우리 광부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여러분!.....”

  그런 요지의 연설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광부들이 많았단다. 연설을 잘하거나 내용이 특별하게 좋았던 것도 아님에도 그랬다.

  광부가 도의원 후보가 되어 당당하게 단상에선 모습만으로도 뿌듯하고 고맙더란다. 그만큼 광부들은 평소 자기직업에 대해 부끄럽게 여겼다.

  이따금 술자리에서“대한민국의 직업들 중에 맨 끝인 거지다음이 우리 광부다”그런 광부들이 나의 출마에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다.

  연설회를 마치고 배포한 마지막홍보물엔 큼지막하게 이런 제목을 붙였다.“민심은 기울었다!!!”두 번째 합동유세가 끝나자 선거분위기는 정말 그렇게 바뀌었다.

  선거초반 경찰정보에서조차 잘해야 2~3등 이라던 선거판세가‘당선될 지도 모른다.’는 여론으로 바뀐 것이다. 광부들이 자기 일처럼 발품을 팔며 뛰어다닌 결과였다.

  그 중심엔 사북.고한지역 광부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온 두 사람이 있었다.‘동원탄좌’파업지도부였던 김창완 씨(사북연락소장).‘삼척탄좌’파업지도부로 활동한 정운환 씨(선대위원장)가 그들이다.

  당시 이 두 사람에 대한 동원과 삼탄노동자들의 신뢰는 대단하였다. 87년~89년도에 동원과 삼탄은 모두 한 달이 넘는 파업을 벌였다.

  그런 파업투쟁을 통해 광부들은 두 사람의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경험한 터였다. 이들에 대한 믿음이 고스란히‘성희직 바람’으로 이어졌다.

  제갈공명이‘동남풍’을 일으켜 조조의 수십만 대군을 물리친‘적벽대전’처럼 두 사람은 성희직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지금이야‘선거의 달인’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나는 그때 만해도 선거운동의 기본도 모르는‘초짜’였다.

  선거사무실에서 일정을 잡아주는 대로 마을마다 부지런히 다니는 게 전부였다.

  나는 선거기간 내내 운동원들이 너무도 열심히 뛰는 모습에 곧잘 감동받곤 하였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나는 도의원을 못해도 좋지만 나를 위해 고생하는 운동원들에게‘당선’의 기쁨만은 맛보게 해주고 싶다!”

  그러한 선거운동과 투표가 모두 끝나고 정선군청에서 개표가 시작되었다.

  민중당정선지구당에선 당직자와 운동원 30~40여명이 군청앞 주차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부재자투표결과가 발표되었다. 내가 2위 후보에게 160여 표 앞서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우리 쪽 개표참관인이 수시로 나와서 개표결과를 알려주었다 “00면에서 130표 앞섰다” 30분쯤 지나면 또 다시 하회탈 같은 얼굴로 나와서는 “00읍은 300표 앞섰다”하고 발표하였다.

  그때마다 우리 운동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댔다.

  밤이 깊도록 맥주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선거운동무용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밤12시가 조금 넘어 2위 후보와 1천400여 표차로 당선이 결정되었다.

  우리 운동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성희직당선 만세!”“민중당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모두가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데도 나는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오히려 담담하였다. 당선된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서였던 모양이다.

  운동권의 기라성 같은 활동가들과 명문대출신 민중당후보 42명이 모두 낙선하고 나만 유일하게 당선된 것이다. 광부출신 강원도의원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많은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실현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진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광산노동자와 가난한 탄광촌사람들이 내 선거를 통해 그걸 증명해 보였다.

  아내는 투표전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봉우리가 세 개인 산에 불길이 활활 타는 꿈이었단다. 그런데 세 개의 산봉우리 중에 가운데 봉우리가 우뚝 높더란다.

  내가 3선의원이 되어 강원도의회 부의장자리에 올랐을 때, 아내가 나중에 들려준 이야기가 그랬다. 아내의 꿈은 나의 정치적 미래를 정확하게 예지(豫知)한 셈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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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리더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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