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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더리더 편집부
  • 칼럼
  • 입력 2011.02.07 00:20

실적 부진 간부에 상 줄 자신 있나

심상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 심상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2011 더리더
【서울 더리더】심상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 “여기 와 계신 대기업 총수들이 마음을 먹으면 그것 하나 못 하겠습니까?”

  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이렇게 몰아붙였다. 여기서 그것이란 동반성장을 의미한다. 혼자만 잘 나가지 말고 중소 협력업체들도 좀 끌어안으라는 다그침이었다. 넉 달 뒤인 1월 24일 대통령은 그룹 회장들과 또 만났다. 이번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우선 장소가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였다. 쉬운 말로 이곳은 회장님들의 아지트다. 경내가 시민에게 공개됐다고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권력의 무거운 상징이다. 그런 곳에서 회의를 하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경직된다. 그래서 이번엔 확 바꿨다. 현직 대통령의 전경련 방문은 처음이었다. 참석한 26명 회장들 가슴에는 명찰도 없었다. 대통령 행사에 참석자들이 이름표를 달지 않은 것 역시 처음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말하고 회장들은 듣기만 하던 스타일도 달라졌다.

  내용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보였다. 동반성장에 관한 대목이다. 대통령은 “동반성장은 대기업이 희생하고 중소기업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보다 둘 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정부가 법으로 모든 것을 다 규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자율적 기업문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넉 달 전 발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이 정부가 즐겨 쓰던 상생이라는 말은 작년 가을부터 동반성장으로 바뀌었다. 어감은 일단 후자가 좋다. 상생이란 말은 ‘같이 좀 먹고 살자’는 약간의 떼쓰기가 깔려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용어를 바꾼들 그걸 실행할 도구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동반성장이란 나무를 어떻게 딱딱한 공장 바닥에 심을 것인가. 24일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얼마 전 비행기 안에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라는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사랑받는 기업이라야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며 회장들에게 일독을 권유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이렇게 거듭 강조하니 기업들도 애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식목 강조 기간’이 끝난 뒤에도 동반성장이란 나무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기업들이 수치와 실적을 중시하는 한 쉽지 않다. 여기 대기업 김 부장과 중소 협력업체 박 사장 경우를 보자. 김 부장의 한마디에 벌벌 떠는 것이 박 사장이다. 김 부장은 회사로부터 끊임없이 실적 향상을 요구받는다. 마침 밖에는 납품을 원하는 다른 중소기업들이 줄 서 있다. 그들은 같은 품질로 박 사장보다 20%는 싸게 공급할 수 있다며 매달린다. 어느 날 김 부장은 박 사장을 불렀다. 박 사장이 술 한잔 모시겠다고 했으나 일부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러곤 납품가를 10% 낮춘다고 통보했다. 김 부장의 실적은 그만큼 좋아졌다. 여기에 다른 노력을 얹어 연말에 보너스도 받고 승진도 했다.

  김 부장, 이젠 이사다. 그는 납품가를 10% 후려쳤지만 청와대에 미안해하는 눈치는 없다. 20%를 깎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절반은 봐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의 승진은 대통령이 아니라 상사가 좌우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박 사장을 보는 눈도 그리 곱지 않다. 영업 핑계를 대지만 ‘PGA(평일 골퍼 협회)’ 멤버가 된 것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신 덕에 호의호식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박 사장을 협력업체 명단에서 빼버린다 해도 상생을 크게 해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업체를 선택할 경우 상생 파트너만 바뀌는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기업의 파트너가 된 회사를 부러워하는 중소기업들이 많다. 그들은 ‘진정한 을’이 되겠다며 오늘도 갑 주위를 맴돌고 있다. 기술은 별나지 않은데도 연줄로 협력업체가 됐다고 경쟁사를 씹기도 한다. 이게 자본주의와 경쟁을 채택한 우리 사회 얘기다. 그래서 갑을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동반성장은 그래서 어렵다. 조금만 개선돼도 다행이다. 칼자루는 역시 갑이 쥐고 있다. 실적 부진 임원에게 상을 내릴 수 있는가. 협력업체 주장대로 원자재값 인상분을 100% 인정함으로써 회사 이익 감소에 ‘기여’한 간부를 승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에 기술개발비를 대준 직원을 표창할 수 있어야 달라진다. 누가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회장님과 CEO다.

  심상복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958년 강릉생으로 강릉고등학교와 서울대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일보사에 입사(1984년)해 주로 경제부 기자로 활동했다.  

  2002~2005년 뉴욕특파원, 2006년 국제에디터, 2007년 경제에디터를 거쳐 2009~2010년 포브스 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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