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이태용 기자
  • 여행
  • 입력 2010.04.10 11:58

라오스 ‘분 삐마이라오’ 축제

▲ 라오스 서북부 복께오주 훼이싸이 삐마이 축제장. ⓒ2010 더리더/이태용
  ◇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중국 춘절은 길게는 한 달, 적어도 보름 이상의 연휴를 즐긴다. 

  이 연휴기간에는 귀성과 관련해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현상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고향집에서 쉬면서 회사에서 강제퇴직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60~70년대도 이들과 마찬가지였다.

  도회지 방직공장이나 가발공장에 취직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추석명절에 내려오고는 다시 올라가지 않아 일터를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긴 시간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랬다.

  이는 근대화를 거치는 개발도상국가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로 어느 나라나 반드시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이 되어 버렸다.

▲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삐마이축제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유명한 곳이다. ⓒ2010 더리더/이태용

  사람사는 세상은 다 마찬가지인지 라오스 최대 명절인 ‘분삐마이라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삐마이가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도시 전체가 들뜬 분위기다.

  직장인도 그렇고 식당이나 호텔, 각종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시골 출신들은 집에 가고픈 마음에 일손을 놓을 정도로 싱숭생숭한 모양이다.

  문화적인 시설이나 별반 놀이문화가 많지 않은 라오스사람들에게 신년명절의 설레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일 년을 보내는 이유도 삐마이명절을 잘 보내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도회지에 있는 시골출신들은 ‘분삐마이라오’를 학수고대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둔다.

  태국의 ‘쏭끄란’과 함께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물 축제’이자 신년행사인 ‘삐마이’는 우리의 ‘설’과는 조금 다르다.

  산간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의 명절은 휴가기간 내내 남뽕(우리의 트로트 종류)을 틀어놓고 한달 전부터 준비한 라오스의 대표적인 맥주 ‘비어라오’를 마시며, 아홉 개의 절을 순례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물을 많이 뿌려 화가 날것도 같지만 이들은 오히려 '보뺀냥'이라고 말한다. ⓒ2010 더리더/이태용

  그러나 외국인이 많이 몰리는 지역인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 빡세, 사바나켓, 타캑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루앙프라방의 삐마이는 마치 내일 이 세상에 종말이라도 올 것 같은 분위기에 젖어 든다.

  이런 모습들이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는 간혹 오늘 하루만 즐기려는 것처럼 비춰져 후회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화와 질서가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명절이라고 하지만 ‘멀쩡히 길을 걷다가 양동이 한 가득 물벼락을 맞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나라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유추하건데 이 장면을 그냥 편하게 지나칠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살인이라도 저지를 듯이 ‘죽이네 살리네’ 하며 소리치고 핏대를 세울 것이 뻔하다. 그도 분하다 싶으면 주먹다짐을 하고 결국 경찰서를 찾아야 끝이 날 것이다.

  이곳에서 삐마이를 보낸 한국인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해하지만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우세하다.

  이는 ‘남이 물 맞는 것은 즐기지만 내가 당하는 것은 싫다’ 이기적인 마음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이보다 더 즐거운 축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 라오스 삐마이 기간에 루앙프라방을 찾은 외국인들은 원주민보다 축제를 더 즐기며 그들과 함께 한다. ⓒ2010 더리더/이태용

   분삐마이라오를 즐기기 위해 라오스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한 3일 물 맞을 각오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해 보라”라는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휴대전화와 패스포트, 카메라와 지갑은 미리 비닐봉지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축제 한 복판으로 뛰어들면 무엇이 이들을 미치게 하는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지난 밤 요란했던 거리를 나가보면 무질서하다는 생각은 뇌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고막이 터질 것 같았던 굉음으로 밤을 보낸 광란의 도시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다. 거리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님들이 딱밧이 아침 일찍 시작된다.

  농부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야채며 과일을 들고나와 시장을 점령하고 도시는 다시 일상으로 잠겨든다. 루앙프라방은 여느 때와 똑같이 바뀐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이런 모습을 처음 본 관광객들만이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것이다.

▲ 쫒는 자와 쫒기는 자의 싸움이다. 자전거 탄 원주민 어린이를 쫒는 외국인에 물세례를 가하고 있다. 루앙프라방 물 축제는 약 5일간 열린다. ⓒ2010 더리더/이태용

  그리고 오전 11시 전후, 어제와 똑같이 헛남(물 뿌리기)이 시작되고 도시는 다시 뜨거운 열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3일에서 5일을 보낸다. 자신들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확인한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축제에 참가하며 도시는 열기를 내뿜는다.

  이 모습을 경험한 외국인들은 소음으로 잠 못 이루는 긴 밤을 보냈지만 단 한건의 불미스러운 일 없이 정리된다는 것에 그저 놀랄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질서를 지키고 스스로 진화하는 ‘분삐마이라오’ 행사에 세계각국의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예년과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이곳 라오스에는 술 한 잔 들어가면 불안해지는 우리나라의 축제와는 전혀 다른 문화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괜찮다”, “걱정하지마라”로 함축되는 ‘보뻰냥’문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태용 기자 leegija@yahoo.co.kr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