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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이형진 기자
  • 사회
  • 입력 2021.02.22 15:19

산업화에 목숨 바친 ‘5천 광부’... 공투위 “폐특법 연장 아닌 시효 폐지 돼야”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산업전사위령탑(자료사진). 이형진 기자

  (정선.태백 더리더) “목숨 바친 5천 광부들 앞에 폐특법 운명 함부로 결정 못해”

  폐특법 시효 폐지 공동투쟁위원회(공동위원장 김태호.박인규(가나다 순), 이하 공동투쟁위)가 22일 오전 ‘폐광지역 시한부 운명 혁파 선언문’을 발표하고 정부를 향햐 강도 높은 투쟁을 다시 예고했다.

  공동투쟁위는 “폐특법 시한 연장은 결코 폐광지역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며 폐특법 시효 폐지를 촉구했다.

  ◇ 다음은 공동투쟁위 선언문 전문.

  누가 저 위대한 산업전사들을 폐광의 나락으로 떠밀었는가? 누가 저 뜨거운 삶의 터전을 싸늘한 폐허로 만들었는가? 우리는 30년 전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 좁은 땅 험해도 삶을 일구었고 높은 산이 막아서도 길을 뚫었던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우리는 안다. 어둠을 밝히고 있는 오늘의 찬란한 불빛 속에 그들의 빛나는 땀방울이 배어 있음을!

  스스로 운명을 개척했던 주민들, 우리는 그 위대한 주민의 후예들이다. 폐광지역법은 1995년 주민운동의 값진 성과물이다. 이 소중한 법은 폐광지역의 회생과 주민 생활의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지역주민의 명줄을 죄는 족쇄로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폐광지역법은 국가와 폐광지역이 합의한 제도적 안전 장치이자, 주민이 피로써 쟁취한 역사적 성과이다. 따라서 이 특별한 법의 운명을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

  폐광지역법의 소멸 시한이 채 5년도 남지 않았다. 특별법의 기반 위에 구축된 수많은 일자리와 경제적 연결망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몰락은 5년 후의 일이 아니라 이미 현실로 시작되었다. 정부 당국은, 추락하는 지역 경제와 몰락하는 주민 생활이 멀어서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가 없는가? 주민의 삶을 보살피는 일에 누가 감히 ‘시기상조’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아직 5년이 남았다고 떠들어 대는가?

  국민의 삶을 돌볼 책임이 있는 정부는, 폐광지역법에 의거한 강원랜드 내국인 카지노라는 산업적 실체 이외에 다른 경제적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입지가 나쁜 산간오지에 폐광지역법의뒷받침 없이 수천 개의 일자리와 공급망 사슬을 유지할 대안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도 태평이라는 말인가? 폐광지역법 소멸이 가져올 후폭풍과 암울한 미래, 그리고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지역의 운명. 이 위험 징후를 우리에게 알리고 대비하게 만들어 준 것은 몸집 큰 정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였다.

  미래로 향한 문이 10년마다 닫히는 지역, 내일로 향한 길이 10년마다 가로막히는 지역에 우리는 살고 있다. 미래로 향한 문, 내일로 향한 길을 열어 주는 일은 응당한 책무이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낭떠러지를 건너갈 다리를 10년마다 잘라버리고, 절벽을 올라갈 사다리를 10년마다 걷어치우면서 마치 저승사자처럼 주민들의 명줄을 손에 쥐겠다는 것인가?

  폐광지역 주민들은 폐특법 시한 만료라는 걸림돌 말고도 이중삼중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지속적 인구감소로 지역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정부의 사행산업 규제는 위선적이라고 할 만큼 유독 내국인 카지노 산업에 대해서만 가혹하다. 살 만한 동네에서는 자신들의 밥상을 더 화려하게 차리기 위해, 폐광지역의 생명줄과 같은 내국인 카지노를 빼앗아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해외 카지노산업의 성장에 맞서 이겨야 할 강원랜드는 퇴행적 규제 정책에 발목이 잡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폐광지역이 겪고 있는 이러한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리고 폐광지역 문제를 초래한 국가의 책임에 대한 역사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폐광지역 주민의 삶을 근원적으로 위축시키는 시한부 족쇄는 반드시 벗겨 주어야 옳다. 폐광지역 발전의 탄탄대로가 열려야 지역 주민들도 움추린 어깨를 펴고 힘차게 걸어갈 수 있다. 반복적 시효 연장으로는 폐광지역의 붕괴를 막을 수 없고 결코 폐광지역의 자립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지난 20년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폐특법 시한 연장은 결코 폐광지역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시효 폐지는 폐광지역의 소멸이냐 지속이냐를 판가름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폐특법 ‘연장’이나 한가하게 입에 올리면서 시효 폐지 주장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폐광지역의 공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1995년 정부가 ‘대책없는 폐광’으로 지역의 경제 기반을 붕괴시켰을 때, 우리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여 결사 항거함으로써 승리를 얻어냈던 역사를 기억하라.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5천 광부들 앞에 제대로 된 기념비조차 마련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나라다. 이 정부가 최소한의 역사의식이 있다면, 또다시 ‘대책없는 폐법’으로 지역의 경제기반을 붕괴시켜 우리 주민들의 결사 항전을 불러 일으키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것이다.

  50만 폐광지역 주민들이여! 분연히 맞서 일어서자! 누가 또다시 폐광지역 주민들을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가? 누가 이 알뜰한 삶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넉넉히 생명을 품었던 검은 산과 녹슨 철탑은 여전히 깃발처럼 우뚝하다. 이 땅의 자랑스런 역사 속에는, 빛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스며 있다.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다 함께 역경을 이겨낼 주민들이다.

  우리는 온갖 장애물을 걷어내고 최종 승리를 향해 전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폐광지역에 덧씌워진 시한부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미래를 향한 큰 문을 우리 손으로 활짝 열어 젖힐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의 역사이고 우리가 이 땅의 미래다.

  이형진 기자 lhj@thelead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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