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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항쟁’.. 황인오 동지회장 “억압에 저항한 6만여 광부들이 외친 소리”
이형진 기자 | 승인2020.08.09 15:36
황인오 사북민주항쟁동지회 회장이 지난 8일 舊(구)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열린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 정선군청 제공). 이형진 기자

  (정선 더리더) “사북항쟁, 3중 억압에 저항해온 6만여 탄광부들이 외친 소리”

  황인오 사북민주항쟁동지회 회장이 지난 8일 舊(구)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열린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 다음은 황인오 동지회장 인사말 전문.

  40년 전 어느 봄날 강원도 탄광지대 산골짝을 뒤흔들며 세상을 향해 외치던 광부들의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강압적인 노동통제 정책에 따라 한 부로 붙여진 산업전사라는 미명 아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제약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존재로서 동원탄좌 5.000여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아니 6만 여명의 이 나라 탄광부들이었습니다. 배우고 잘난 사람 하나 없이 이른바 외부 세력의 개입 하나 없이 순도 100% 일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외친 소리였습니다.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 같았던 광부들의 목소리에 조금 귀를 기울이는 듯 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40주년을 앞두고 40년 전 광부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에게 저지른 폭력, 고문, 성폭력과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의 모멸을 안겨주었던 참혹한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후속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듯 했습니다. 관계 당국자들이 무언가 숙의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겉보기에는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관계 정부당국의 손발이 부족하고 경황이 없어서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광부들의 목소리는 곧 허공에 사라지는 힘없는 목소리라고 간주해서라고 봅니다. 사북항쟁 40년을 맞아 정부 당국 일각에서 논의한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촛불 정부의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촛불 이전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거기 봉사하던 집단들은 민주주의를 몇 가지 형식과 절차만 거치면 되는 것이라고 여겨 온 역사와 과정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피땀 어린 희생과 노력으로 매일매일 자라나는 나무와 같습니다. 많이 배우고 잘난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봉사하는 ‘앙상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배격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지만 땀 흘려 일하며 나라의 터전을 이루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이들, 노동자와 농민 봉급생활자, 자영업자 등 이 사회를 바닥에서부터 떠받치는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존중받는 사회를 향해 하나씩 채워나가는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우리가 지향하는 진짜 민주주의이고 촛불 시민들이 소망하는 진짜 민주주의입니다.

  관계 당국은 지난 2015년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간의 협정이 왜 비판받고 사실상 폐기되었는지 상기하기 바랍니다. 협상 과정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잘못은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및 관련단체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협상을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관계당국은 당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북항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실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는 태도를 가지기를 요청합니다. 형식적이고 면피성 사과로 모면하려고 하지 마시길 권고합니다.

  사북항쟁은 단지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 동안 일어난 일만 지칭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 근대화의 역사 첫머리에서부터 국민생활과 산업현장의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석탄광에서 노사자율이 아닌 국가의 강압적 노동통제 정책에 따라 헌법적 권리인 노동기본권을 제약당하며 살인적 노동환경과 기업들의 임금 갈취, 노동통제정책의 말단 하수인 노릇을 하던 노동조합이라는 3중의 억압에 저항해온 6만여 탄광부들이 외친 소리였습니다.

  80년 당시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노동자들의 재해 사고율과 사망률은 이른바 선진국에 비해 3~4배 높은 시절이었다는 것은 대체로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광부들의 재해 사망률은 가장 위험한 직종인 건설업에 비해 최소 6배, 제조업에 비해서는 최소 20배 이상의 재해사망율을 보였습니다. 국가는 강압적 노동통제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인 노동기본권을 억압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를 틈탄 탄광기업은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바꾼 생산의 댓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갖가지 명목으로 갈취를 일삼았습니다. 경찰과 노동청, 정보부 그리고 기업의 말단 하수인 노릇을 하며 광부들의 고혈을 빨던 노조 귀족들은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고통받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며 희생당하는 현장에 코빼기 한번 비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80년 사북항쟁은 수십 년 누적된 탄광노동의 적폐가 임계점에 도달하여 터진 사건이라고 보아야 사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광부들이 자신의 입으로 민주주의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산업 현장, 민중의 생활 현장에서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고 일구고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성장하고 채워나가는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희생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으로 정착되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일부 당국자들과 퇴행적 지식인들이 ‘앙상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진실의 고동을 울릴 수 있도록 더 크게 외치지 못했다는 점을 스스로 반성하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합니다. 함께 하신 지역 주민 여러분, 그리고 풍성하고 살아있는 진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시민들과 연대하여 산맥으로 가로 막혀 아직 광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계신 이 나라를 이끄는 높으신 분들의 귀에 닿을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결코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광부들의 목소리에 아예 귀도 기울이지 않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듣는 시늉은 해준 셈이니 우리가 좀 더 노력하면 광부들이 진짜 무엇을 말하려는지 들어보려고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당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북항쟁 40주년을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크게 힘을 내주신 강원도지사님, 정선군수님, 강원랜드 대표이사님, 강원민주재단 이사장님 등 관계자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저희들에겐 크나큰 위로이며 힘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급격한 지역 경제의 위축과 기상이변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뒤늦은 40주년 행사가 원활히 치러지도록 애써주신 ‘3.3재단’과 ‘지역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 등 지역의 선후배 여러분께 마음을 모아 감사드립니다.

  40주년, 꺾어지는 해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더없이 좋았겠으나 내년 41주년에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내년 행사에는 더욱 풍성하고 의미 깊은 문화 행사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서울과 부산, 고양과 부천 등 경향 각지에서 와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가시는 길 모두 무사하시고 평안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형진 기자 lhj@thelead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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